1998년 x월 x일
A. 까뮈 著/서정철 譯/서문당 發行/1971 초판/1976 3판
지난주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번 주에는 쉬고 있다. 일거리는 있는데도 거절했다. 짤려도 할 수 없지, 일 하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있어 봤자 능률도 안 오를 것이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테니까 내 이미지만 나빠질 것이다. 어차피 돈 없기는 마찬가진데 몇 푼 더 번다고 내 사정이 나아지지도 않을 것인데, 내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한 푸근한 일쯤으로 생각해야지. 요즘 같은 IMF 시대에 그런 선심 베푸는 것도 어디야? 먹을 게 없으면 굶으면 되지, 남들은 돈 들여 다이어트도 한다는데. 어디 이 참에 살 좀 빼 볼거나......
TV를 보면 IMF가 몰고 온 경제사정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가끔 그런 것을 보면서 그래도 저들은 나보다 나은데 엄살부리는 것 아냐?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예전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다들 절대 빈곤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일말의 위로를 느낀다면 욕먹을까? 그러나 그 욕은 마땅히 이 땅의 정치가나 재벌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라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병이 또 도지고 있다. 환절기 증후군인가? 지난겨울엔 그 겨울을 보내기가 겁이 났었는데, 이젠 또 이 봄을 보낼 일이 무섭다. 일을 거절한 것은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인간관계가 싫어서이다. 돈 때문에 아귀다툼을 하는 현장에 뛰어들어 참아내야하는 내 현실이 싫어서이다. 뭣 같은 인간들한테 바보인척 해야하는 것도 한계를 넘었고(진짜 바보인데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믿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경쟁 상대로 삼아 내 입지를 망가트리는 짓도 차마 용납할 수가 없다. 니체가 말했던가? 고독한 사람은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고. 그 악수하는 손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고.......
현대소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하나 읽다가 입이 궁금해서 과자를 사러나갔다. 마침 운전면허증 뒤에 숨겨둔 비상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 면허증은 녹색이지만 운전경력은 1년도 못 채웠다. 차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물질 때문에 연약한 내 신경이 압박을 받는 걸 못 참는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콘 스낵과 우유 그리고 방울토마토를 사오다가 비디오 샵에 들렀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나왔던 프로를 버젓이 신 프로에 진열해 놓고 있는 웃기는 곳에서 [퍼니 게임]을 골랐다. 그런데 [퍼니 게임]? 얼마나 즐겁고 웃기는 게임일까. 웃어 본지도 오래인데 간만에 한 번 웃어 볼까? 하면서 골라 본 비디오를 보고 기분이 정말 더러워졌다. 뭐 이따위 영화가 다 있어? 필름을 꺼내서 태워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포르노보다도(포르노는 아직도 볼 기회가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역겹고, [트레인스포팅]의 장면보다도 더럽고, [쉰들러 리스트]의 아우슈비츠 보다 더 잔혹하다. 차라리 폭력, 마약, 섹스, 이런 것들 때문에 저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더 낫다. ‘퍼니’가 우습다는 외에도 이상하다는 뜻도 있는데 그럼 이상하다는 의미를 채용해서 이런 시도를 해보았다는 뜻인가? 흡혈귀 영화나 [죽음의 묵시록], [델리 카트슨], 뭐 이런 영화들에서 느꼈던 섬뜩함보다는 또 다르다. 기분이 나빠서 잠이 다 안 올 지경이다. 극의 중간에 리모콘으로 죽은 사람을 재생시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이상한 방식 때문은 아니다. 내가 정말 불쾌한 것은, 아직 정리가 덜 됐지만, 아마도 이유 없는 폭력 때문일 것이다. 이유도 없고, 증오도 없이 단지 게임을 위한 살인이라는 설정이, 그것도 정신병이라든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매우 노멀하게 설정된 상태에서(범인들은 우주나 경제에 대한 학문적인 얘기도 한다.) 연속적으로 태연하게 진행시킨다는 사실이,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다. 감독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주려는 것일까. 그런 걸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런 영화는 없애버려야 한다. 차라리 [타이타닉]처럼 돈을 버리는 것이 낫지, 이렇게 정신을 버리게 만드는 영화는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흥분 끝-
잠이 안 와서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 방 저 방에 아무렇게나 대책 없이 쓰러지고 자빠지고한 책들을 정리해서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챙겨놓았다가 이사가야지~ (작년 가을부터 이사갈 계획이었는데 아직도 못 가고 있다.)
책장이 넓어서 두 줄로 책이 놓여진 뒷줄에서 까뮈의 [행복한 죽음]을 발견했다. 구입한 날짜도 없고 내용이 생각 안 나는 것으로 보아 누가 놓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책을 잃어버리는 대신 가끔 이렇게 모르는 책이 끼어들 때도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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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죽음]은 까뮈의 첫 번째 작품이고, [이방인]의 모체가 된 작품이고, 유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미발표작이었던 까닭은 자신에 대하여 엄격했던 까뮈가 생전에 아무 것이나 경솔히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개나 소나 다 작가가 되어 덜컥 책을 내놓고 광고만 때리면 다 되는 줄 아는 요즘에 한 번쯤이라도 반성 해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자의 주인공은 ‘메르쏘’이고 후자의 주인공은 ‘뫼르쏘’이다. 이 두 작품은 유사성도 있고, 상이성도 있다. 로제 끼요는 ‘뫼르쏘는 메르쏘의 동생으로 두 작품이 전혀 별개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앙드레 지드는 ‘[행복한 죽음]이라는 번데기에서 [이방인]이라는 유충이 형성된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두 작품이 별 개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인, 혹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동기와 결말이 다르고 주인공의 심리가 다르다. [이방인]의 부제가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작가가 두 작품을 동일시 했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행복한 죽음]은 치밀하게 계획된 완전범죄의 살인이고 [이방인]은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쪽의 퍼센티지가 줄어든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의 또 다른 하나는, [행복한 죽음]은 주인공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는 데에 두었다는 것이고, [이방인]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이방적’인가를 갑자기 깨닫게 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전자에서의 자유와 독립의 염원은 곧 시간과 돈이라는 매개물이 있어야 실현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행복한 죽음]의 메르쏘는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 ‘자그뢰스’를 죽이고 그의 재산으로 자신이 염원했던 삶을 살다 죽는다. 그러나 [이방인]의 뫼르쏘는 행복의 조건조차 생각해내지 못하다가 감옥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 남들과 얼마나 다른가를 깨닫고 또다른 생에 대한 염원으로 오열하는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나는 작가가 경험한 가난과 불행의, 그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심층의 층위를 보는 느낌이 든다. 전자에서는 대중적이고 평범한 수단을 택했고 후자에서는 고도의 수법으로 자신의 사상(부조리)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첫 장에 나오는 [행복한 죽음]의 살인 장면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을 생각나게 한다. 수법은 다르지만,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면에서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단지 돈이 없어 인생을 실패로 끝낼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향유할 가치가 없는 불구자나 전당포 노파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는 과정에서 과연 그 가치부여의 권한은 누가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데 TV에서 어제 저녁 네 명의 여중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20층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동반자살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미국에서는 십대 소년 둘이 총기로 육십여 명을 사살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죽음, 이번 주 내내 기분이 나빴던 것은 이런 소리와 글과 영상을 한꺼번에 경험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가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죽음들이 눈앞에 떠올라 공포를 느낀다.
부조리한 삶을 산다는 자각도 고통이다.
까뮈의 교통사고 현장 사진은 너무 처참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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