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desk 98

폭력의 구조/김현

푸른얼음 2007. 1. 4. 14:25
 

1998년 x월 x일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

        김현 문학전집10/문학과 지성사/1992년 11월 초판


“앗, 사월이구나!”

아침에 무심코 창문을 열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보고 나는 혼잣소리를 질렀다. 창문을 가로지르는 나뭇가지에도 수액이 올라 연두색으로 방울방울 움이 트는 중이었다.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혼자 방안에 있을쏘냐, 나는 여기저기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전화 받는 인간이 아무도 없다. 혼자라도 나갈 거야, 나는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한 다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한 차례 전화 버튼을 눌렀다. 간신히 한 인간이 걸려들었다. 만나자는 말에 잠깐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진다. 좋아, 느이들이 나를 피하는 거 다 알아. 내가 툭하면 ‘나 잘 하면 굶어 죽을 것 같다!’ ‘나 외로워 죽을 것 같다!’ 하고 재미없게 구니까 나를 귀찮아한다는 거 다 안다구. 그래도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야지......

나는 전화 받은 친구에게서 작년에 비디오를 빌렸던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꼭 전해 주겠다고 우겼다. 친구는 작년 가을 이후로 나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겨우 생각해내고 약속을 정했다. 참고로 내가 친구에게 빌렸던 비디오는 포르노 테이프였다. 내가 아직까지 그런 걸 볼 기회가 없었다니까, 친구는 자기 남편의 친구가 복사해다 준 테이프를 갖고 있다며 내게 빌려 준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문을 꼭꼭 닫고 혼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돌려 본 테이프에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가 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주었더니, 테니스 광인 남편이 그곳에까지 녹화를 해놓았었는지는 몰랐다나?

지난달엔 소설을 조금 끄적인다는 친구들을 만나 강화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인삼 막걸리를 마시다가 심심해서 이 얘기를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면서 저마다 콩트 감으로 써먹겠다고 난리들이었다. (혹시 이런 내용으로 원고료를 받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소재 사용료를 받아낼 것임.)

친구와 만나기 전 나는 여기저기를 거닐다가 벚꽃이 만개한 장소의 어느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길 건너에 있는 꽃 그늘에서 세 살쯤 돼 보이는 아기와 엄마가 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아기와 놀고 싶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아기 엄마가 나를 보더니 “어머!”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며 “왜요?”하고 물었다. 나는 평소에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라 상대방은 나를 아는데 나는 몰라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 엄마의 말이 뜻밖이었다. “너무 멋있어서요.” 세상에! 난 이런 식으로 놀라는 사람은 또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댁도 만만치 않아유’ 하고 답례를 하려 했더니 아기 엄마는 아기를 데리고 자리를 뜬다. 아기의 머리에 미장원에서 사용하는 보자기가 씌워진 것을 보아 미장원에 갈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가는 계집아이의 예쁜 눈망울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혹시 내가 유괴범처럼 보여서 도망가는 것은 아니겠지......

친구와의 만남은, 으~ 피곤하다. 돈을 참 잘 쓴다. 물론 나에게 쓰는 것은 아니다. 마치 나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쓰는 것 같다. 그게 괜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은근히 내게 부족한 재물로 나를 지배해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엿보여서 그런 걸 느끼기가 피곤하다. 역시 집에서 책이나 보는 편이 나한텐 제격인가 보다. 지난주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못 다 읽은 [폭력의구조]나 마저 읽어야겠다. 

-----------------------------------------------------


이 책, [폭력의 구조/시칠리아의 암소]는 르네 지라르와 미셸 푸코의 이론을 김현 선생이 정리한 것이다. 푸코의 이론은 많은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지라르의 이론은 그에 비해 덜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푸코보다 지라르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특히 평소에 궁금증을 느끼면서도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한, 카인, 외디푸스 콤플렉스, 욥, 등등에 관한 새로운 분석을 다루고 있어 구미가 당겼다.

우선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정의해 본다.

지라르는 소설을 <낭만적 거짓>이라 규정하고, 소설 주인공의 욕망체계는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이루는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지라르는 또한편 자신의 이론을 욕망의 포기, 화해라고 하는 기독교적인 주제와의 화해를 하는 데에도 쓰려고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목표로만 받아들인다. 지라르를 읽다보면 전에 어려워했던 라깡의 [욕망이론]이 생각난다. 엊그제는 러시아의 ‘공간의 기호학’에 관한 책을 빌렸는데, 이것을 읽고 나면 라깡에게 접근하기가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라르는 [낭만적 거짓]과 [폭력과 신성한 것]으로 유명해진 희생주의적 인간학의 창시자이다.(p) 지라르가 중점적으로 연구한, 혹은 김현 선생이 5.18 광주항쟁에 대해 심리적 배경으로 택한 [폭력과 신성한 것]의 요약은 이러하다.

모든 사회적 질서는 기원적인 폭력의 열매라는 것이다. i) 새로운 질서를 창건하려는 자는 여러 명의 경쟁자를 물리쳐야하고 그래야 새 질서가 이룩된다. 그에 발생하는 폭력이 기원적 폭력. ii) 창건자를 정당화 시키는 종교적 의식은 그 기원적 폭력을 신화의 형태로 숨김. iii) 신화는 그러므로 창건자가 저지른 박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 “희생된 자들의 유죄성을 믿도록 하는 사형집행인들이 왜곡하여 쓴 텍스트. 그러나 성서적 신화는 다른 신화와 다르게 희생자들이 무죄하며 또 집단적 살인을 통해 창건된 문명은 시종일관 살인적 특성을 가지게 되며 결국 그것의 폭력적 기원의 희생주의, 질서, 유지적 능력이 일단 소진되면, 그 문명의 기초인 폭력으로 회귀하여 자멸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치는 희귀한 신화이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에서 피력한 욕망의 중개 현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욕망의 매개자와 욕망의 주체 사이의 거리가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그 욕망이 모방 욕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현상이고, 또 하나는 그 거리가 아주 적어 그 욕망이 모방 욕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현상이다. 지라르는 앞의 것을 외적 중개, 뒤의 것을 내적 중개라 부른다. 외적 중개에 있어 중개자는 훌륭한 전범이며, 욕망의 주체는 그를 마치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모방하듯 모방한다. 모방은 공개적으로 인정되고 추구된다. 그러나 내적 중개에 있어, 타자는 전범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경쟁자가 되어 타자와 욕망의 주체 사이에는 경쟁상태가 이루어지고, 전범은 방해자가 된다. 모방은 공개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부인된다. 욕망의 주체는 전범을 찬탄하면서도 증오하기에 이르는데, 왜냐하면 그와 그의 전범은 같은 대상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타자는 전범이기 때문에 경쟁자며, 경쟁자이기 때문에 전범이다. 경쟁자-전범과 그 사이에는 계속적인 욕망의 오고 감이 있으며, 그것은 갈수록 강화되어, 둘 사이의 차이점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모든 욕망은 중개된 욕망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욕망은 자발적이며,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은 낭만적 환상, 낭만적 거짓이다. 진정한 소설은 그 낭만적 거짓을 드러내, 모든 욕망은 매개된 욕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낭만적 인물들의 고독과 자율성은 경쟁적 고독이며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

골드만의 [문학사회학을 위한 서설]은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을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과 대비시킨 것인데 골드만에 의하면 지라르는 소설이란 문제아를 통해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 라는 점에서 루카치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루카치가 소설이란 본질적인 어떤 내용을 표현하려는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보는 것에 반하여, 지라르는 소설가는 작품을 씀으로써 타락한 현실 세계를 떠난 진정성, 다시 말해 수직적 초월을 이룩한다고 보는 점에서 루카치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

모방이론에 입각한 지라르의 외디푸스 해석: 

지라르는 리비도를 먼저 내세우는 프로이트의 외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동의하지 않으며 리비도 보다 모방이 먼저라는 것을 이론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꼬마는 아버지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어하며 아버지를 이상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 태도는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거의 같은 이 동일화 현상은 “소유를 통해, 다시 말해 아버지의 대상물들을 양화함으로써” 자신을 이루려는 존재욕망이다. 꼬마는 그의 욕망 속에서 그를 대신하려 하며 그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려 한다. 동일화 현상은 욕망이 아버지의 대상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사유 속에는 “아버지와 동일시하려는 모방과 욕망을 객체에 뿌리박기, 다시 말해 어머니에 대한 리비도적 성향의 자율성 사이의 내적 갈등”이 있으나 순서적으로 볼 때 모방이 먼저고 리비도적 성향은 그 뒤에 온다. 그 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갈수록 강해진다.

이와 같은 지라르의 외디푸스 이론은 나 같은 사람에겐 프로이트의 이론보다 더 수긍이 가는 요소들이 많다. 지라르는 프로이트의 그것을, 어린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른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이론으로 보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동기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전범(모방의 대상:아버지)의 무죄성을 드높이고, 제자(아이)의 유죄성을 드러내려는 어른의 태도가 바로 프로이트의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낳은 배경이라는 것이다. 

지라르가 [폭력]에서 제시된 것을 훨씬 단순명료하게 정리한 것이 [세상]이다. 지라르는 [세상]에서 남을 모방하려는 현상, 그가 mimesis, imitation, mimetisme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그는 [세상]에서 소유(我有化)모방이라 부르고 그것의 포기를 포기모방mimesis du renoncement이라고 부른다. 아유화, 소유appropriation라는 개념의 등장은 그의 모방 이론이 단순히 性的 모방으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확대되어나가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 “소유 모방은 감염적이다”라고 그가 말할 때 그것은 경제적 예들을 즉각 환기시킨다. 그 다음, 폭력에서 일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이라고 표현되던 것은 집단 살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그것의 전면적 성격이 더욱 부각된다. “제의적인 것의 중심 행동이 때로는 집합적인 희생물 살해라면, 신화의 주된 장면은 때로 집합적인 신적 인물의 살해이다”라는 식이다. 그 다음, 초석적 폭력이라는 표현은 초석적 私刑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진다. “초석적 사형에서 희생물은 위기에 책임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라는 식의 표현은 그 폭력의 자의성을 더욱 강조하는 표현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집단적 폭력을 입증하는 텍스트들은 i) 사회적. 문화적 위기의 묘사, 다시 말해 일반화된 무차별 현상의 묘사(제1상투형) ii) 무차별화 범죄(제2상투형). iii) 이 범죄 행위자들은 희생자로 선택될 표지를 갖고 있다. iv) 폭력 그 자체(제4상투형)의 네 상투형들을 담고 있으며, 이 상투형들이 있으면 박해의 텍스트라 말 할 수 있다. 그 네 상투형이 다 있을 필요는 없고, “셋으로도 충분하며, 때로는 둘도 괜찮다.” 그 상투형들은 i) 폭력은 실재하며 ii) 위기도 실재하며 iii) 희생물은 죄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표지 때문에 선택되며 iv) 희생물이 이 위기의 책임을 떠맡고 그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 도식은 보편적이며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도식을 교묘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신화이다. 외디푸스 신화를 예로 들면, i) 페스트가 테베를 휩쓴다 -사회적 위기  ii) 외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차이를 없앤 사람이다 - 무차별화 범죄.  iii) 외디푸스의 다리 절기, 외국에서 옴, 왕의 아들이며 왕이라는 사실은 그가 희생자의 표지를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표지. iv) 그는 추방된다는 네 상투형을 다 갖고 있다. 겉보기에는 처형이 없는 것 같은 신화에도 그 흔적들은 남아 있다.

---------------------------------------------------

이상으로 김현 선생이 분석 정리한 지라르 이론들의 요약을 마친다. 위의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관심사 부분만 들추어 요약한 것이다. 그 외에도 흥미 있는 텍스트 분석들이 많이 있다. 특히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요셉, 욥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희생제의적 고찰 등도 관심이 많은 부분들이다. 전에 읽었던 이동하의 [신의 침묵에 대한 질문]과 연결시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지만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나를 망설이게 하는 그 무엇이(?) 또 나를 재촉한다. 

낮의 일 때문에 기분이 또다시 가라앉는다.

좋다. feeling high! 오래간만에 딥 퍼플의 ‘April’이나 들어봐야겠다.

'Reading desk 98'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꾸는 자의 나성/윤흥길  (0) 2007.01.04
마르크스 인간과/E.프롬  (0) 2007.01.04
빈센트 반 고흐/어빙스톤  (0) 2007.01.04
유서/박성원  (0) 2007.01.04
유리알 유희/헷세  (0) 2007.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