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영화 <악어> |
제목: 악어 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전무송, 안재홍, 우윤경 한강에 ‘악어’가 산다. 그 악어는 한강다리 밑에 살며 투신자살한 사람의 시신에서 지갑을 뒤져 돈을 찾기도 하고 또 시신이 있을 만한 곳을 알려주어 돈을 챙기는 짓도 한다. 그(악어)에게는 물 속에 있는 시신이 밥줄이 되는 셈이다. 그의 옆에는 깡통줍는 늙은이와 앵벌이 꼬마가 있다. 깡통줍는 늙은이는 그의 미래이고 앵벌이 꼬마는 그의 과거이다. 꼬마에겐 아직 세상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늙은이에겐 세상에 순응하고마는 절망이 있다. 그리고 악어에겐 주체하지 못할 원망이 있다. 어느 날 그들 관계 속에 끼여드는 한 여자, 그 여자는 투신 자살자였지만 예외적으로 악어가 구해내어 그들의 일원이 된다. 악어의 세계로 들어온 여자는 화가이다. 그리고 또한 애인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이기도 하다. 여자의 애인이 여자를 버린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굳이 야비하다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여자의 애인은 자신에게서 여자를 제거하기 위해 타인에게 집단 강간을 사주한다. 그 내막을 모르는 여자는 애인에게 강간 당한 자신이 부끄러워 목숨을 내던지지만 나중에 가서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 여자는 악어의 성적 배설욕구를 충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점차로 노인과 아이와 악어로 연결되는 삼각구도 속에 들어앉아 그들의 관계를 조금씩 뭉뚱그려놓는다. 여자는 파충류인그들에게 구원의 여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여자를 구해 낸 악어가 여자를 강간하려하자 여자는 깨진 유리를 들어 반항을 한다. 그러자 악어는 오히려 깨어진 유리로 자해를 하면서 강간하려 한다. 그러나 여자가 저항을 포기하고 눈을 부릅뜨니까 웬일인지 강간을 포기하고만다. 강간을 포기한다는 것은 파충류인 악어에게 아직 人性의 뿌리가 남아있었다는 뜻도 된댜. 獸心이 가질 수 없는 인성에는 막연한 동경이 있다. 막연한 동경, 그건 그가 이룰 수 없는 신분상승일 수도 있고 어머니의 자궁 속에 머물러 있을 때 느꼈던 편안하고 따듯한 기억일 수도 있다. 물의 이미지와 같이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감정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변화된다. 예컨대 악어가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파충류로 살아가야 할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도 결국은 그 낯선 감정, 막연하고 어렴풋하고, 어쩌면 그가 태고 적부터 동경했을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모두 죽고 혼자 남은 앵벌이 꼬마, 아마 그 꼬마도 머지않아 악어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사실적인 세상을 알기 위해 가끔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를 볼 때가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세상의 다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여타 예술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실은 아름다운 세상을 원하는 피상적인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원하지만 나 혼자만의 안테나로 삶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추악한{폭력과 공포와 사악함) 단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프로를 보면서 아, 세상은 저렇구나. 인간의 삶이 저렇게 흘러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이 영화 [악어]도 그런 느낌을 준다. 아주 충격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제껏 한강의 한 면 만을 보고 있던 자신을 느낀다. 어떤 한 사람(감독)의 눈으로 읽어낸 한강이 꼭 나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실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적어도 그런 쪽에 포커스를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다양성(극에서 극으로)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것은 비인간적이기까지한 그것이 결국은 인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수평으로는 레오 까라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생각나게 하고(거기에 나오는 드니 라방은 꼭 장정일의 이미지를 닮았다), 수직으로는 울리 에덴 감독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생각나게 한다. 한쪽은 더러운, 비인간적인 삶에도 인간적인 사랑의 빛이 지날 때도 있다는 개인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냉혹하고 추잡한 사회의 치부를 참혹하게 드러내는 데에 있다. 이 영화에서 개연성을 의심하게 하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즉 킬러가 등장한다든가, 깡통줍는 노인이 자판기 속에 들어앉아 커피를 팔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든지 하는 등등의. 그러나 그것은 파충류처럼 보이는 인간과, 인간처럼 보이는 파충류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강한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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